
Cake & Kariya
Happy Birthday! 2016.03.22
글, 만화, 그림이 합작 제출 역순으로 게재되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감상해주세요><)!


미친 듯이 몰아치는 눈설레를 헤치던 계절이 지나가고 마토 저택의 마당에서는 영영 보지 못할 줄로만 알았던 붉은 동백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마토 카리야는 안락의자에 앉아 그 붉은 꽃잎이 창문을 두드리는 것을 바라보다 익숙한 세 얼굴을 발견한다. 젠조 모녀들이다. 사쿠라가 작은 머리를 들고 카리야를 올려다본다. 그러곤 제 언니인 린을 끌고 와선 카리야에게 손 인사를 한다. 카리야도 손을 흔든다. 젠조 아오이는 그들을 보며 웃는다. 그녀의 손에 빨간 리본이 묶여있는 하얀 상자가 들려있다. 그녀들은 저택의 도우미가 현관 앞에 나올 때까지 카리야와 소리 없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겨울은 길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카리야의 몸을 반 토막 내버린 탓에 의자 팔걸이를 짚고 일어나려해도 할 수가 없다. 일어나 그녀들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 현관 문 앞에 가 있었을 뿐 몸은 의자에 더 파묻혀버린다. 카리야는 자신의 무력함에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쉰다.
똑똑, 가볍게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도우미가 들어온다.
"주인님, 손님이 오셨어요."
"어서와, 아오이 씨. 사쿠라 쨩과 린 쨩도. 밖이 아직 춥지?"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어머, 린, 예의바르게 인사해야지."
그녀의 말에 린과 사쿠라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카리야 아저씨."
도우미는 미리 준비 해둔 차와 작은 접시를 가져와 테이블에 놓는다. 아오이도 하얀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둔다.
"선물로 케이크를 가져왔는데 카리야 군, 쇼트케이크 좋아했던가?"
"내가 좋아하니까 아저씨도 분명 좋아할 걸요?"
린이 당당하게 말하며 카리야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카리야는 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젠조 아오이는 사쿠라의 손을 잡고 맞은편에 앉는다. 도우미는 찻잔을 그들 앞에 놓고 천천히 차를 따른다.
"미리 와서 인사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미안해. 사쿠라가 갑자기 열이 나서 한동안 보살펴 줘야 했거든."
그녀의 말에 카리야는 사쿠라의 안색을 살피기 시작한다. 사쿠라는 입 꼬리를 올려 살포시 웃는다. 겨울까지만 해도 표정이 얼어 인형 같은 얼굴로 기계처럼 말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보인다. 다행이다. 그럼에도 사쿠라는 두 손을 꼭 쥐고 허리를 뻣뻣하게 곧추 세우고는 간신히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아직 이 저택의 풍경은 여전히 그때와 같았고 그녀의 눈은 무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되살려내서 이곳을 보고 있다. 카리야는 빠른 시일 내에 저택의 인테리어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 나한테 연락을 하지 않은 거야?"
"카리야 군도 아프잖아.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카리야 군에게 두 번이나 폐를 끼칠 수는 없지."
모든 세팅을 마친 도우미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자리를 피한다. 젠조 아오이는 고개를 저으며 손뼉을 크게 짝 친다.
"자, 그럼 빨리 포장을 풀어봐. 카리야 군을 위해 특별 주문한 케이크야."
카리야는 리본을 잡아당긴다. 리본이 쉽게 스르륵 풀린다. 상자를 연다. 그곳엔 아기자기한 컵에 담긴 하얀 케이크 6개가 있다. 생크림에 푹 빠진 카스테라와 꽃잎 같은 딸기가 층층이 담겨있다. 가장 꼭대기에는 쇼트케이크의 하이라이트인 딸기가 가운데에 박혀있다. 보기만 해도 상쾌하고 촉촉한 식감이 느껴진다.
"맞아, 어머니가 만들 때 먹어봤는데 엄청 부드러웠는걸요."
린은 포크 하나를 카리야 앞에 가져다준다. 린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아오이 씨가 직접?"
젠조 아오이는 볼을 붉히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린과 사쿠라도 같이 했는걸. 그렇지?"
"반죽이랑 딸기 꼭지 떼는 거랑."
린이 흥분에 차 말한다.
"생크림도 잔뜩 묻혔어."
사쿠라도 말한다.
"모두들 고마워. 이 아저씨 감동이야."
카리야의 눈가가 붉어진다. 카리야는 이를 악문다. 그녀들의 따스한 말 한마디들은 용기를 북돋아준다. 앞으로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용기. 마토 집안에도 봄은 행복을 안고 들어와 함빡 카리야의 품에 안겨들었으니.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내 선물이야."
젠조 아오이가 카리야의 손을 감싸 쥔다. 카리야의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한다. 성배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어느 부둣가의 창고에서 아쳐를 공격하던 버서커가 갑작스레 폭주를 하는 바람에 카리야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몸을 일으킬 여력도 없었다. 죄 몸 밖으로 피를 쏟아내는데 쓰고 있던 탓이었다. 뇌가 이리저리 뒤집혔고 세상도 거꾸로 뒤집어졌다가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가 아예 검게 물들었다가 하였다. 카리야는 몸을 웅크리고 미친 듯이 날뛰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어야했다. 진심으로 버서커를 불러다 자신을 찌르라고 명하고 싶었으나 부를 힘도 없어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카리야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자신의 무력함에 고마움을 느꼈다.
카리야는 얼굴을 붉힌다. 성배전쟁 당시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호흡곤란이 왔다면 지금은 행복해서 숨을 어떻게 쉬는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신의 손을 잡은 젠조 아오이에게 부풀어 터져버릴 심장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을까싶어 숨고만 싶은데 그녀의 손을 내치지도 못한다. 카리야가 고개를 숙이자 젠조 아오이가 웃는다. 카리야는 겨우 공기를 마시고 그녀에게 고개를 돌린다.
"아오이 씨?"
"쉿"
젠조 아오이는 손가락을 카리야 입 앞에 댄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카리야의 허연 낯빛을 감싼다. 카리야는 자신의 얼굴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벌겋게 익어가는 자신의 몸이 마치 한창 타고 있는 숯불처럼 느껴져 젠조 아오이가 그 뜨뜻한 공기를 마주할 걸 생각하니 숨이 가빠진다. 젠조 아오이는 온화한 미소를 띠우며 손을 내려 다시 카리야의 마른 손을 조심스레 감싸 쥔다. 그러곤 자신의 가늘고 여린 목으로 이끈다. 손에 힘을 준다. 뽀얀 살 위로 새하얀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강하게 카리야의 손등을 짓누르며 자신의 기도를 압박한다. 카리야는 비명을 지른다. 그녀의 손아귀가 아파서가 아니다. 토오사카 아오이는 마토 카리야의 행복을 죽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이 힘을 준다. 그 힘은 서번트의 악력과 흡사하다. 다다르고 싶었던 케이크를 눈앞에 두고 카리야는 또 다시 토오사카 아오이의 목을 죄고 있다.
마토 카리야는 소리친다.
"아니야, 이거 아니야. 이거 놔. 아오이 씨? 놔 줘. 제발."
그러나 토오사카 아오이는 더욱 손가락에 힘을 주며 마토 카리야의 손을 옭아맨다. 숨구멍을 찾지 못한 그녀의 눈은 까뒤집어지고 입에선 침이 주르륵 흐른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끄으으으으윽, 카리야, 군."
그녀가 말한다. 마토 카리야의 눈물이 그녀의 입술 위로 떨어진다.
"생,일,축,하,합,니,다."
토오사카 아오이가 눈을 감는다. 그러자 양 옆에서 박수소리가 들린다. 토오사카 린과 마토 사쿠라이다. 둘은 함박웃음을 머금고 진심으로 축하와 경배를 담은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
눈을 떴다. 벌레들의 호흡과 진액의 냄새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습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역한 냄새가 나는 곳이다. 피비린내와 벌레들의 오물냄새가 뒤엉켜 풍기는 곳인데 지금은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몇 년간 그 속에 있었더니 코가 익숙해진 건가? 나는 정신을 다시 다듬어야 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흐릿한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 고개를 들었다. 내 눈 앞에 사쿠라가 있었다. 나는 사쿠라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왜 이곳에 내려왔어? 자아, 엄마랑 아저씨랑 케이크 먹어야지."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사쿠라는 싸늘한 눈빛으로 벌레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분노를 이해 할 수 있어서 마음이 조여 왔다. 내가 많이 늦어서 미안해. 그때 사쿠라가 말했다.
"바보 같은 사람, 할아버지를 거역하니까."
소름이 끼쳤다. 누군가가 생각나는 표정이다. 나는, 나는, 사쿠라가 뒤돌아섰다. 바로 그때였다.
"잘 잤나? 카리야."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뒤를 밟으려던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익숙한 목소리에 머리가 울렸다. 그가 어떻게 이곳을 알았는지는 제쳐두더라도 왜 살아있는가? 나는 침을 삼키고 떨리는 심장에게 진정하라고 몇 번을 다그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죽으면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고 하더니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죽어야 그 안식을 찾을 수 있는 모양이야."
멀끔한 붉은 양복에 뻔뻔스런 낯짝.
"너, 뭐......, 뭐......,"
나는 입술이 떨려 말 할 수가 없었다. 혀가 경직되었다.
"그리고 나는 안식이란 것을 위해서인지 상처받고 있는 중이다. 지금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하니 계속 상처만 받는군."
토키오미는 내 상태에 아랑곳 않고 여전히 태평스레 지지재재거리고 있었다.
"아주 화가 나는 건, 네가 내 아내를 망가뜨려놓았다 하더라도 내가 온전히 자넬 욕 할 수가 없다는 거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지 몰랐지만, 지옥 같군."
"닥쳐!"
울화통이 터졌다. 속이 울렁거려 뭔가 토해내고 싶어졌다.
"내가 아오이 씨를 망가뜨려? 아니야. 지금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카리야,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잘 잤냐고. 그만 꿈 깨."
"꿈?"
"정확히는 죽음이 준 망상이지. 더 쉽게 영혼이 닳도록 해주는 걸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죽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물론이지. 지금 자네가 어디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억지로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목 뒤에서 뼈마디가 뚝, 뚜두둑 하고 내 움직임에 맞춰 소리를 냈다. 나는 지금 어디에 발을 올려두고 있는가?
벌레들에게 먹혀가는 흉측한 나, 제대로 미소도 못 띄우면서 행복을 가득 끌어안고 죽은 나. 나는 고개를 다시 들었다. 토키오미의 양복은 멀끔하지 않았다. 찢겨진 옷 주변에 선명하게 검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너의 죽음 역시 마음 아픈 일이었다만 그래도 고통을 공유할 상대가 나타나니 조금 기쁘군."
토키오미가 손을 내밀었다.
"자네의 상상에게 애도를 표하지. 마토 카리야, 다시 못 볼 생일을 축하하네."
나는 토하고 싶은 것을 삼켜야 한다.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오고
밤이 오면 우리는 창백한 들판 위에
차가운 달이 남몰래 웃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잡고 쉬게 되겠지.
-방랑의 길에서
헤르만 헤세 <크눌프> 中









